13화 필리핀 세부의 종교축제 : 시눌룩(Sinulog)

2026. 5. 25. 10:00세부여행

 
 

시눌룩 포스터

시눌룩(Sinulog)는 매년 1월 셋째주 주일에 산토니뇨(아기예수)를 찬양하는 필리핀의 가장큰 종교축제중 하나입니다. 이 기간동안에는 수백만에 이르는 내국인뿐만아니라 많은 외국인관광객이 세부로 모여들며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일부도로가 폐쇄되고 심지어는 이동통신서비스도 중단됩니다. ‘Viva Santo Nino’라는 구호를 외치며 진행되는 시눌로그춤은 축제의 꽃이며 수주에 걸쳐 예행연습을 해온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는데 춤의 형식은 두걸음 전진 한걸음 후퇴로 강의흐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태평양의 적도부근에서 12월말경에 일어나는 양분이 낮은 해수의 온도상승으로 발생하는 이상기온변화를 크리스마스쯤 발생한다하여 스페인어로 아기예수를 의미하는 엘니뇨(El Nino)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 산토니뇨의 기원은 어디에서 시작된걸까요?
 
16세기 포르투칼 탐험가 마젤란은 대서양을건너 향신료가 풍부한 신대륙을 발견하고자 자국의 국왕 마누엘 1세를 찾아갔지만 거절을 당하고,결국엔 경쟁국인 스페인 국왕 찰스 1세을 설득하여 5척의 배와 250명의 선원을 지원받는데 성공합니다. 그는 뉴스페인(오늘날의 멕시코)가 있는 아메리카대륙을 거쳐 태평양을 항해하는중 태풍을을 만나 2척의 배를 잃고, 마침내 1521년 4월 7일에 남은 3척의 배로 세부에 도착하게 됩니다.
곧 마젤란은 세부의 지배자인 라자(왕) 후마본이 스페인과 동맹을 맺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하였으며 후마본과 그의 아내는 캐톨릭 세례를 통해 카를로스와 조아나라는 세례명을 받습니다. 이에 마젤란은 평화와 우정의 상징으로 준비해간
 십자가, 성모마리아상과 더불어 스페인왕실의 의상과 왕관으로 장식이된, 아기예수상(Santo Nino)을 선물하였습니다. 
1521년 4월14일에는 캐톨릭전파를 기념하기위해 거대한 나무십자가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세웠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마젤란십자가이며 그 이후 약 700명의 원주민들도 세례를 받게됩니다. 
시눌룩
 
이후 마젤란은 세부의 지배자 후마본 과 막탄의 지배자 라푸라푸가 오랜 경쟁관계인것을 알아채고 후마본을 부추겨 1521년 4월 27일에 막탄섬을 침공하지만 기대치못했던 강한 저항에 마젤란 본인과 상당수의 스페인병사가 전사하게 됩니다. 마젤란의 시신을 찾기위해 스페인 탐험대는 많은 재물을 교환댓가로 제시하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은 세부로 타고온 세척의 배를 운용하기에는 남은 선원수가 부족했기에 할 수 없이 컨셉션이라고 불리는 배는 포기하고 트리니다드와 빅토리아, 두척의 배로 이등항해사였던 주안 세바스챤 엘카노의 지휘하에 인도양과 대서양을 거치는 반대항로를 통해 약 1년4개월만인 1522년 9월에 스페인으로 귀항함으로써 역사상 최초의 항해를통한 지구일주를 이룩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스페인국왕 찰스 1세로부터 a coat of arms라는 훈장을 수여받게됩니다. 
이때부터 필리핀은 동인도에 있는 야만인들이 사는 섬나라로 유럽에 알려지며 수차례의 스페인탐험대에 의한 정복이 시도되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시눌룩
그후 44년뒤인 1565년 4월 28일 스페인탐험가, 미구엘 로페즈 데 레가스피가 세부에 도착했을때 함포로 원주민 마을을 포격했는데그 잿더미속에서 산토니뇨가 들어있는 나무상자가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성물로 여겨지기 시작했으며 이미 세부의 원주민들이 시눌로그라는 축제를 통해 이를 숭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산토니뇨는 1965년 4월 28일 교황 폴 6세에 의해 정식으로 성물로 인정되었습니다.